안녕하세요! 여러분,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읽고 솔직히 좀 충격 먹었어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너무나도 날카로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했죠.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호모 데우스’에 대한 제 생각을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단순한 감상평은 아니고요, 제가 전문가로서 바라본,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 위주로 말씀드릴게요. 자, 시작해 볼까요? 😉
1. 알고리즘과 신: 데이터 종교의 탄생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가 앞으로 ‘데이터 종교’를 믿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죠.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데이터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는 세상, 상상만 해도 좀 무섭지 않나요? 예를 들어, 요즘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 보세요. 내 취향을 너무 잘 알아서 좀 무서울 정도잖아요. 😅 이런 알고리즘이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우리는 어느새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선택지 안에서만 살게 될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알고리즘은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들의 가치관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제가 예전에 AI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데이터 편향 문제로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가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그러니, 알고리즘이 우리 삶의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면, 결국 우리는 알고리즘 개발자들의 가치관에 의해 지배받는 셈이 되는 거죠. 이게 바로 ‘데이터 종교’의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이런 데이터 종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편향된 데이터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도 마련해야 할 거 같아요. 단순히 기술 발전만 추구할 게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2.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그리고 새로운 인류의 도래?
하라리는 인간이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호모 데우스’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호모 데우스’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킨 초인간이라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이 부분에서 ‘진화’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는 단순히 ‘더 나은’ 상태로 향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잖아요. 환경 변화에 따라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선택되는 복잡한 과정이죠.
그런데, 하라리가 말하는 ‘호모 데우스’는 정말 ‘진화’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욕망에 의한 인위적인 창조물일까요? 저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전자 조작 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다면, 그 결과는 과연 인류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질까요? 제가 유전공학 관련 논문을 읽다 보면, 기술 발전의 속도가 윤리적 고민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을 자주 목격합니다.
따라서 ‘호모 데우스’라는 개념을 단순히 미래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인간의 책임과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거죠.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3. 불멸과 행복: 진정한 인간의 의미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시대에는 인간이 죽음을 정복하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사는 것이 정말 행복일까요? 저는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은 매우 큰 행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사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슬픔, 고독, 절망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을 거고, 그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질 수 있겠죠.
제가 몇 년 전에 심리학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행복’에 대한 다양한 연구 논문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나 건강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 타인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으면서 느끼는 연대감,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 등 다양한 요소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세상에서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영원한 삶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삶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라리가 제시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은 분명 충격적이고 흥미롭지만, 그 예측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어야 할 겁니다.